"거창하게 옳다고 주장하는 글은 어쩐지 거짓말 같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생각했다. 아버지가 물려주시고 떠난 의령군 가례면 운암리 시골집에도 사소한 것들이 나를 위로한다. 이 시골집은 마을과 외딴 곳에 있다. 자굴산 한 자락 저수지 둑 밑에 감나무 과수원 옆에 자리했다. 앞마당 절반은 자갈을 깔았고 또 절반은 조선잔디를 심었다. 화강암을 화단 경계석으로 땅에 박아넣은 꽃밭에는 소나무와 홍가시와 보리수와 들국화가 자리하고 있다.
나는 지난 봄 외갓집에 외삼촌이 새로지은 시골집 마당에서 국어교사이신 외삼촌 앞에서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 한 소절을 읊고 모란씨앗을 주머니에 넣어 왔다. 씨앗은 화단 한켠에 심었는데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 봐도 검은색 동그랗던 그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리고 땅 속에서 흙이 돼 버렸을지도 모를 그 씨앗을 생각한다.
눈동자 빼고 온몸이 검은 늙은 고양이 한마리도 내 시골집에 산다. 해가 좋은 날엔 우리집 데크 위에서 축 늘어져 자고 늘 울어서 어머니한테 자주 구박을 받는 이 고양이는 한번은 피부병에 걸려 얼굴에 부스럼이 크게 있었는데 어머니는 "병걸려 죽기라도 하면 처리하기 곤란하다"고 하셨다. 다행히 다 나아서 우리 집으로 돌아 왔다. 이 고양이에게 깜디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아내는 양산 우리집 아파트에서 남은 생선구이를 볼 때마다 깜디를 떠올렸다. 나는 이 얘기를 들을 때 마다 어머니는 동물을 싫어하는 냉혈한 사람이고 아내는 동물을 좋아하는 따듯한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답을 내리지 못한다. 
시골집은 주말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부터 새로운 근로의 현장이 됐다. "시골집은 보이는데 마다 손이 가고 일이다"는 어머니 한숨을 듣고는 구름을 쳐다보고 화단 한켠에 핀 이름도 모르는 꽃을 우두커니 볼 찰나에 내 어깨는 이미 예초기를 매고 있고 뒷마당을 정리하고 전지 가위를 들고 있다.
뒷마당에는 겨울에 쓸 장작더미가 쌓여 있고 사과나무와 자두나무, 포도나무, 뽕나무와 어머니가 심어놓은 푸성귀가 자라고 있다. 매부가 제초제를 진드기 잡는 살충제인줄 알고 나무에 쳐서 가을처럼 잎파리가 우수수 떨어지고 채 자라지 못하고 영글지 못한 아기 주먹만한 사과가 언제 떨어질 지 모른채 달려있다. 제초제가 닿지 않은 복숭아 열매를 따서 한입 베어 물었다. 연두색 과육에 붉은 부분이 간간히 띄는 복숭아 열매였는데 그 맛은 달면서도 풋풋했다. 그리고 전멸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초여름인데 가을처럼 잎파리가 바짝말라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보면서 나무에게 힘 내라고 응원을 했다. 초보 농사꾼의 실수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무신경 하나에 생명이 죽고 아버지도 애이 괜찮겠지 하는 사소한 무신경에 목숨을 잃으셨다. 사소한 것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몸서리처질 만큼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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