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나무 군락지 후손목. 흰색 나무 껍질이 독특하다.

의령 자굴산 강선암 선녀탕 선암나무 '눈길'
수백년 된 듯한 조상목 주변으로 군락지 형성
짝 없는 노총각, 노처녀들에게 행운 주는 장소 

늙은 나무가 별이 깊은 밤이면 열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뿌리는 곳. 모든 것이 초록초록한 경남 의령군에 '비밀의 숲'이 있다. 유독 흰 색 수피가 두드러지는 느티나무 군락지다. 이 느티나무는 선암나무라고 부른다. 선암나무는 백과사전에도 수목도감에도 없는 명칭이다. 이른바 지역주민들의 인문지리적인 문화가 담긴 나무 이름이다. 

이 숲이 자리한 곳은 자굴산 자락으로 의령군 가례면 운암리 상촌마을 운암소류지 산책로를 따라 15분 가량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상촌마을은 토박이 말로 굴바구마을로 불린다. 굴바구는 의령문화원에서 발간한 향토 문헌에 따르면 '굴 바위' 마을이다. 실제로 산책로를 따라오르면 강선암이 있다. 강선암은 선녀가 강림한 바위라는 뜻이다. 너른 병풍바위가 10m 가량 펼쳐져 있고 고래의 뱃속 같이 움푹 패여 있다. 바위 위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데 수량이 많을 때는 절경을 자랑했다고 한다.

강선암은 선녀들이 멱감던 곳이다. 선암나무는 강선암 선녀탕 가림막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선암나무된 것 아닌가 하는 추정만을 할 뿐이다. 노총각 노처녀가 강선암서 목욕하면 배필을 만난다는 믿음도 전한다. 의령군에서는 강선암을 조망할 수 있는 데크를 조성해 놓았다.   

선암나무 군락지는 과거에 천수답으로 쓰던 곳이다. 군데군데 돌담이 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의령군산림조합에서 숲길 산책로를 조성해 평상과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도 놓았다. 느티나무는 수피에 실로 꿰멘 듯한 무늬가 있다. 서양에서는 느티나무를 'Saw leaf'라고 부른다. 잎파리가 톱날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른게 아닌가 한다. 선암나무도 일반 느티나무와 같이 실밥을 꿰멘듯한 무늬를 갖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흰색 수피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느티나무는 수피가 갈색이다. 

군락지 한 가운데에는 최초의 조상목이 있다. 둘레가 성인 남성 3명이 손을 맞잡아야 될 정도로 큰데 대략 4m는 족히 된다. 수고는 10m쯤이다. 나무는 보호수로 등록돼 있지 않다. 의령군산림조합에서 선암베기라는 구전을 표지판으로 설치해 놓았다. 조상목을 중심으로 사방에 흰색 후손목 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전체 면적은 가로 500m*세로 600m 규모다. 나무는 산에 위치했지만 천수답으로 쓰이던 곳이라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다. 느티나무 기둥 줄기가 베베꼬인 것도 있고 두 개 줄기가 동시에 뻗쳐 오른 것도 있다.

선암나무는 흰색 선녀복을 입은 선녀들이고 조상목은 신선이 아닐까. 이들이 강선암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신경림 시인은 <우리동네 느티나무들>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중략- 늙으면 동무나무 썩은 가질랑/슬쩍 잘라 주기도 하고/세월에 곪고 터진 상처는/긴 혀로 핥아 주기도 하다가/열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머리와 어깨와 다리에/가지와 줄기에/주렁주렁 달았다가는/별 많은 밤을 골라 그것들을/하나하나 떼어 온 고을에 뿌리는/우리 동네 늙은 느티나무들

자굴산 강선암 선녀탕. 

의령군에서 설치한 강선암 현판.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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