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 고향, 이름처럼 의로운 고장

솥바위 전설이 아니다- 삼성, 엘지, 효성 창업주 탄생

해방후 한국식으로 변형된 소바 '의령소바'로 승화 

 

의령(宜寧)은 의병(義兵)의 고장입니다. 의령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신라 경덕왕때부터 입니다. 고장의 이름처럼 이 곳은 곽재우 장군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홍의장군'이라 불리던 장군은 정암다리를 지나 의령군 초입을 지날때 옛적 그대로 홍의를 휘날리며 말을 탄 조형물이 되어 우리를 맞고 있습니다.  

망우당 곽재우 장군은 지금의 남강 물줄기를 따라 의령군 정암리(鼎巖里)와 함안군 월촌리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솥바위 인근 강변에서 왜적과 전투를 벌여 크게 이겼습니다. 이른바 '정암진 전투'에서의 승리로 관군이 재정비를 할 시간을 벌어주게 됩니다. 더 자세히는 정암루(鼎巖樓), 그리고 솥바위가 있는 이곳 바로 아래가 정암나루가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승첩지 입니다. 전투는 왜적이 강을 도하하기 위해 마른 곳에 꽃아둔 팻말을 간밤에 진창에 꽃아 왜적들이 허우적댈때를 틈타 매복된 군사들로 하여금 공격하게 하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강물을 보면 어떤 지역이 깊고 얕은지 강변모래와 섞여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장군은 강 깊은 곳에도 장애물을 설치해 배를 통한 도하가 불가능 하도록 손을 써뒀습니다.  

이 곳 정암리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솥바위 이야기 인데요. 솥 정, 바위 암자를 써서 마을 이름이 정암리 입니다. 이 솥바위에는 예로부터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 바위 반경 8km 이내에 큰 부자 3명이 난다는 것이지요. 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3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설이 현실이 됐다는 것입니다. 삼성, 엘지, 효성의 창업주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호암 이병철은 의령군 정곡면(正谷面)에서 태어났습니다. 솥은 역사시대 이전부터 존귀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영묘함에 무릎을 치게 합니다. 나랏님께서 이 솥에서 많은 밥을 지어서 많은 백성들이 골고루 나눠 먹는 그런 태평성대를 이루라는 뜻이겠지요?

 

 

의령군은 또 '일붕사'라는 절을 의령 9경중에 셋째가는 명소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일주문 옆에는 절간의 연혁을 설명하는 푯말이 서 있는데요. 이 설명에 따르면 일붕사의 전신은 성덕사이며 그 유래가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기관, 가령 문화재청이나 의령군에서 세운 푯말인지는 확인할 수 없어서 그 신빙성에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다만 영국 기네스북에서 일붕사의 동굴법당을 '세계 최대의 동굴법당'으로 인증해 준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동굴안은 현대 과학의 힘을 빌어 깎았습니다. 표면이 매우 정교하게 깎여있어 인공의 미가 느껴진다 하겠습니다. 경내에는 또 폭포가 있는데요. 인공인지 자연 그대로인지는 궁금하게 만듭니다. 한편, 이 곳에는 높은 바위절벽이 있는데요. 두말할 나위없이 자연이 빚은 것 입니다. 저는 인공의 미가 느껴지는 동굴법당 보다는 이 자연 절벽에 더 눈길이 가더군요.

 

마지막으로 의령하면 '소바'를 빼놓을수가 없겠네요. 소바는 일본 음식인데 어째서 의령에서 유명하게 된 것일까요? 최근에는 '의령소바' 를 전면에 내세운 체인점이 생겨 사람들에게 더욱 알려졌지요. 의령군에 따르면 의령소바는 김처악 할머니가 군청 앞에서 장사를 하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정통 일본식 소바와는 다르게 소고기 장조림을 곁들여 풍미를 더하게 합니다. 시금치, 멸치를 넣고 우린 국물의 칼칼하면서도 텁텁한(?) 독특한 그 맛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미지근한 육수에 말아먹는 온소바, 시원하게 먹는 냉소바, 비빔소바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제강점기 일본 음식에 조선에 들어오면서 한국식으로 변형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요리도 퓨전이라고 할수 있나요? 하하. 여튼 하이브리드, 잡종이 미덕이 되고 있는 시대에 더할나위없는 우리의 전통 음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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