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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12.03 육사 11기 똥배짱은 어디서 나왔나 1

선배장교에 함부로 하던 건방짐
미국서 교육받은 첫 엘리트 장교
"서울대만큼 공부잘했다 아입니꺼"

4년제 정규 학위 받은 첫 사관생도
한국전쟁 당시 진해서 훈련 받아
서울 수복 뒤 태릉 옮겨 55년 졸업

전두환은 똥배짱이 두둑하다. 영화 <서울의봄>에서 전씨는 12·12쿠데타 가담 세력에게 말한다. "김일성이 안내려 옵니다. 걱정마소" 또 이런 대사도 있다. 전 씨가 자택에 하나회 선후배들을 불러 모은 뒤 "서울대 갈만큼 공부 잘해서 육사 왔다 아입니까" 육사라는 긍지가 느껴지는 대사다. 

전두환이 실제 그런 말을 했는지, 영화 제작자가 상상으로 만든 말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육사가 4년제로 정규 졸업생을 배출한 첫 기수가 11기다. 육군사관학교 11기 전두환은 1951년 육사에 입학한다. 당시 6.25전쟁이 한창일 때 휴교한 뒤 1951년 10월 31일 경남 진해에서 정규 4년제로 재개교 했다.

전쟁 중에 서울이 수복되고 육사는 진해에서 서울 태릉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첫 열매인 11기 156명의 졸업식이 1955년 10월 4일에 거행됐다. 이해에 국회에서 사관학교 법률이 통과돼 11기는 이학사 학위를 받게 됐다. 태릉 육사 화랑대 연병장에 전두환도, 노태우도 있었다.   

전 씨는 육사생도로 첫 정규교육을 받았다는 자긍심이 강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육사가 편찬한 60주년 책자에 따르면 일선 부대에 배치돼서 11기 생도들은 위용이 높았고 기풍이 드셌고 위풍당당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육사 11기부터 미국으로 군사 유학을 갔고 초급 장교 시절엔 군 부패 척결에도 앞장섰으며 집단적 엘리트 의식과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극 중에서 선배 장군들에게도 목에 힘주고 기죽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아마 이런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육사 10기까지는 6.25전쟁서 실전으로 다져진 군 장교들이다. 11기들은 전쟁이 한창일 때 후방 진해에서 교육 받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높은 경쟁을 뚫고 4년제로 입교한 육사10기(생도2기)는 입교 몇 달 뒤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번도 없이 전쟁터에 투입됐다. 총쏘기 훈련을 배우다가 갑작스레 투입됐는데 생도 277명 중 132명이 조국을 위해 싸우다 산화했다. 이들은 정규 사관생도 과정을 다 이수하지 못했다며 졸업장도 받지 못하다 40년만인 1996년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육사 10기가 입교 1달도 채 안돼 군사교육중에 전방에 투입된 것은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가 없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도 엘리트 사관생도를 최전방에 투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육사 11기와 육사10기 1년 차이로 선배 기수는 전쟁터의 이슬이 됐고 후배는 정규 군사교육을 마쳤다는 첫 생도라는 자신감으로 정권을 찬탈했다. 그리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결국 1979년 12.12로 전두환은 정권을 찬탈한다. 선배를 깔보던 그 똥같은 자신감이 군홧발이 돼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살육했다. 전두환의 면모를 또 엿볼 수 있는 부분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이를 찬양하는 가두 행진을 벌여 박정희의 눈에 났고 비서관에 임명돼 박정희 의장을 옆에서 지켜봤다. 혁명을 옆에서 지켜 보던 청년 장교는 스스로 또한번 군인이 나라를 구한다는 우월의식으로 권력을 집어 삼켰다. 

이렇게 서울의 봄은 짓밟혔다. 별 2개짜리 보안사령관이 상관을 감옥에 처넣고 급기야 대통령을 해먹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 노태우도 대통령을 한 번 했다. 

육사10기와 육사 11기를 보면서 1년만에 뒤바뀐 그들의 생사고락을 결정한 당시 군 지휘부의 판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역사는 가정할 수 없지만 육사 10기가 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면 내가 대한민국에 제대로 교육받은 첫 장교다라는 전두환 같은 인물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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