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 손수 가꾸던 뜰 감탄

집필실의 단출한 모습, 그의 소탈한 성품 엿볼수 있어

아들잃은 박완서와 평소 친분, 어머의 슬픔이 문학에 녹았나

<박경리 선생의 동상. 그가 좋아하던 고양이, 텃밭을 가꿀때 쓰던 호미, 책을 볼 수 있다.>

박경리 선생은 고향은 통영이지만 하동을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 <토지>를 썼다. 박경리 선생을 기리는 문학관은 강원도 원주와 경남 통영, 하동 등지에 있지만 가장 큰 곳은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원주에는 박경리 문학공원 뿐만아니라 토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토지문화관도 있다. 선생은 1980년 강원도 원주에 군 장성이 쓰던 단독주택을 매입해 살았다. 사위 김지하 시인이 투옥되고 괴로워 하는 딸과 손자를 위해 원주로 들어온 것.

박 선생은 통영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던 남편과 결혼해 살았지만 6.25전쟁통에 사상범으로 투옥된 뒤 소식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서울 정릉에서 살때는 아들이 사고로 머리를 다쳐 제대로 된 치료도 할 수 없이 앓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이때부터 박경리 선생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이 시작된다.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집필하던 안방의 책상. 커다란 사전이 펼쳐져 있다.> 

생전에 박경리와 박완서는 친분이 깊었다. 박완서 선생은 위로 네딸과 막내 아들을 뒀다.  서울대 의대에 다니던 박완서 선생의 아들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비명에 죽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박완서 선생은 식음을 전폐하고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졌다. 이때 박경리 선생이 박 선생을 원주로 초청해 직접 기른 채소로 된장국을 끓여 먹였다고 한다. 

원주시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은 박 선생으로 인해 훌륭한 문화적 자산을 갖게 됐다. 지금도 원주에는 미래의 작가들이 박 선생을 기리면서 그의 보금자리를 터전으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했고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사셨던 그의 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박경리 선생이 살던 자택에 들어가면 그가 집필활동을 하던 안방이 있다. 평소 유일한 사치라고 했다는 몽블랑 명품 만년필과 국어사전이 펼쳐져 있고 손때 묻은 안경도 볼 수 있다. 다른 가구는 일절 볼 수 없다. 손 수 지은 옷을 입었고 자연과 더불어 살길 즐기는 한 문학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박경리 문학관에 전시 된 육필 원고와 만년필.>

<박경리 선생의 자택에 직접 주워 온 돌으로 만든 연못. 손자 원보가 플라스틱 대야에서 물놀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만들었다고 한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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