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을 차 버리고 제주를 택했다. 내 일터에서도, 제주에서도 지역발전 적임자는 자신이라며 선거가 한창이었다. 휴가 결재를 받을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무단 결근을 감행했다. 어차피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있다. 아들 민승이와 두차례나 떠나기로 했지만 무산된 바 있었기에 이번 만큼은 떠나고야 말있다.

아들 민승이 비행기를 타는 것을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제주공항 인근의 연동, 제주특별자치도청 근처 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나중에 아내의 말을 듣고 알았지만 우리 옆에서 식사를 한 사람이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자 였다고 한다. 섬사람말이 아니라 서울말이 들려왔다. 어떤 곳이든 그랬다. 제주도는 고유성을 잃고 육지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아들 민승이가 공룡 모형을 보면서 공룡 이름을 쫑알쫑알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와 짙푸른 녹음이 음을 편안하게 했다. 가만히 앉아서 바람이 풀을 간질이는 모습을 봤다. 이 섬 안을 마구 달리다 보면 어딘가에서 바다를 만나겠지.  

 대흘리에 숙소에서 여장을 풀었다. 마당이 예쁜 집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시커먼 현무암으로 쌓은 담장과 거기 서 있는 농막에서도 제주를 느낀다. 귤밭이 싱그러움을 더한다. 시골길을 따라 드라이브 하는 것도 제주를 느끼기에 좋다는 생각을 했다.

땅콩소스를 묻힌 해물찜을 맛봤다. 처음 맛보는 땅콩소스 해물찜의 그 오묘한 맛이 아직도 기억 난다. 숙소로 돌아와 해먹에 누워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첫 선거 유세가 벌어지고 있는데 너는 제주도에서 뭐하느냐, 좋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장 바쁠때 일탈하는 묘한 쾌감이 들었다. 

제주도의 절물자연휴양림은 절에서 물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절물이라고 했다. 어려운 한자말이 아니라 쉬운 우리말이라서 의외였다. 절물 자연휴양림에 깔린 나무길을 따라 숲길을 걸었다. 나무를 만져보고 숲 냄새를 맡고 아들 민승이의 들뜬 표정을 보면서 나도 스트레스가 풀렸다. 살얼음이 진 감귤 쥬스를 마셨는데 여기가 제주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제주도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이 섬에는 오장육부를 파랗게 씻겨주는 무언가가 있다. 현무암 숭숭 뚫린 구멍에 내 고민 걱정, 잡념이 빠져 나가 버리는 것 같았다. 성산일출봉에서는 진을 치고 결사항전 하던 삼별초가 생각났다. 김영갑 갤러리에서는 제주를 뼛속같이 사랑한 한 예술인의 집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가난한 사진가일 뿐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오름, 그리고 바람을 영혼으로 담았다. 농사가 안되는 척박한 땅에서 4.3을 겪은 제주 민초들은 제주의 지독한 바람과 싸우는 풀을 닮았다. 

나는 밥벌이로 글을 쓰는 그냥 직업인이다. 지역신문 기자로 불리우는 일을 하는데 내 직업이 부끄러워도 밥벌이를 위해 참고 한다. 제주가 있기에 나는 내 부끄러움을 씻어 버릴수 있었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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