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2일 오후, 황맹규와 대구 근대골목으로 출발. 경상감영공원을 목적지로 1시간 30여분 정도 소요됐다. 경상감영공원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공원 내부를 쭉 둘러봤다. 대부분 노인들이 벤치를 차지하고 않아 한가롭게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당시 주리틀기 등 조선시대 풍속을 재현하는 공연이 막 끝난 참이었다. 경상감영공원은 오늘날의 도청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관청 감영이 있던 곳을 공원으로 관리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감영은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선정을 베풀다), 기거하던 징청각(깨끗하고 맑게하다) 등 조선시대 관아아 건물이 일부 남아있다. 

감영공원을 떠나려하는데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들려 귀를 쫑긋 세웠다. 개신교인들이 10여 명이 모여서 예배를 보고 있던 것이었다. 최근 잇따른 개신교인들의 돌출행동(단군상 목베기, 불상에 오줌싸기)에 감영이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인데 혹시 해코지 하지나 않을지....

감영공원 한쪽 귀퉁이에 대구근대역사관이 있다. 르네상스풍의 고풍스런 건축물로써 일제가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1932년에 완공했다. 내부로 들어가니 은행임을 암시하는 금고를 비롯해 일제시대 어음, 화폐 등도 전시돼 있었다. 또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영상물과 전시물을 확보하고 있었다. 한편, 조선식산은행은 오늘날 산업은행의 전신이기도 하다. 또 경상감영의 훼손되기 이전 모형도 찾아볼 수 있는데 놀라웠던 것은 구한말 친일파 박중양이 대한제국 황제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일제의 요청에 의해 읍성을 철거한 일이다. 오늘날 대구 최대의 젊은이들의 거리 동성로는 읍성을 철거하고 신작로를 내면서 형성된 거리이다. 이후 계산성당 방문. 계산성당은 1902년에 완공된 유서깊은 성당이다. 집에 오는 길에 유명한 낙지전골로 배를 채우고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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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에 입사하고 김국재 독자서비스부장의 인솔하에 내서읍 중리의 윤전부를 방문했다. 

2011년 3월 8일 오후 9시 10분에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상인데 이제서야 올려본다. 이날 방문에는 임종금, 신정윤 기자, 

지금은 퇴사하거나 휴직중인 전병기, 최성철, 이상훈 사원이 함께 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공장 안은 소음이 심해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어려울 지경이다.   


윤전기는 근대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계 중 하나다. 근대언론은 인쇄산업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많은 양의 신문을 빠른 속도로 대량으로 찍어내는(press) 기술이 없었더라면 신문도 없었을 것이다.  

윤전부 선배들은 기계 스위치만 누르면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 기록 하지 못해 설명할수가 없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지난 2011년 말에 세계 최대의 윤전기 회사인 만로란트가 파산했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로 잘 알려진 세계 인쇄업의 고향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쇄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언론사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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