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미친 남자 김진량, 그는 일본인이 그토록 사랑하는 조선사발 중 하나인 오기다완(일본식 명칭)을 양산 꽃사발로 명명하고 재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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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출신이라 내세우는 후보는 가짜다

 

토박이 강조는 선거공학적으로도 비합리적 선택

외지인이 더 많지만 토박이 강조하는 이유는?

혈연, 학연, 지연에 의존 않아야 참신한 정치

 

토박이가 지역현안을 잘 안다는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참일수도 있고 거짓일수도 있다. 사실 토박이를 정의하기도 어렵다. 토박이를 양산에서 출생해 양산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해 양산에 살고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해보자. 과연 양산의 인구 구성비 중 토박이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문제의식의 출발은 이렇다. 왜 양산사회는 토박이가 아니면 정치하기 어려울까라는 질문이었다. 양산사회에서 토박이가 가지는 잇점이란게 대체 무엇일까? 문제는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 능력보다 동향사람이기 때문에, 실력보다 나와 같은 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그를 더 좋아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과 후보자간의 관계말이다. 양산 정치는 토박이 출신 정치인들이 토박이 출신임을 내새우지 않을때 진정 발전한다. 양산은 상전벽해의 발전을 이뤘다. 경남도 변방의 촌락에서 전국에서도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도시로 손꼽힌다. 토박이 출신 정치인만 당선된다는 믿음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 심경숙 양산시의회 부의장도 산청군 출신이다. 그의 당선은 더이상 양산 출신만 당선될수 있다는 비합리적 믿음을 깨부술 수 있는 하나의 증거가 됐다.

양산에 살면서 토박이냐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또 토박이들이 문제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선거 프레임을 식상한 지역발전론을 들고 나오지 말고 토박이와 비토박이간에 프레임을 제기할줄 아는 참신한 정치인을 우리는 왜 볼 수 없는지 안타깝다. 토박이와 비토박이간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모든 이면에 공고하게 뿌리내린 전근대적 연고주의를 타파할 참신한 정치인이 보고싶다는 말이다.

연고주의는 대한민국을 병들게하는 적폐 제1호다. 만약 유권자들이 연고에 포섭돼 표를 던져준다면 NO라고 말할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토박이냐 아니냐를 묻지말고 지역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어떤 발전전략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가르쳐야 진정 참신한 정치인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도의원 후보 모두 토박이 출신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토박이 출신임을 자랑하고 있다. 지역출신이며 양산의 초중고교를 나왔다는 사실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큰 잇점을 발휘하는지 모르겠다. 이들이 양산 인구구성이 토박이가 소수지만 토박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연고주의에 호소하는 것이다. 연고주의 타파에 과감하게 나서는  참신한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자. 그것이 양산발전, 대한민국 발전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양산신문> 신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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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준, 국민의당 양산도의원 보궐선거 후보>

청소년이 꿈 가지도록 하는 의정활동 하고파


어릴 때 아버지 여의고 국밥집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

카페, 재활용센터 운영하다 300억 매출 회사로 키워

우울증 겪은 뒤 매년 50여권 책읽는 습관 생겨  

"시민정치 시대, 정치인이 시민 속이던 시대 끝나"

                         <강창준 후보가 물금신도시의 선거사무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창준(국민의당·48) 도의원 1선거구 보궐선거 후보는 홍순경 국민의당 양산갑위원장의 양산고 한 해 후배다. 그는 정당생활을 한지 불과 1년이 안되는데 지난해 홍 후보의 영입 인사로 정치에 발을 디뎠다.

지난 3월 17일 물금읍의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토박이가 지연, 혈연, 학연으로 연결돼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높으나 토박이 출신이 아닌 후보가 선거에 뛰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양산정치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자신도 토박이 후보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제 시민의 시대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속여 왔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며 자신이 시민 정치시대를 대표할 정치인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에 맞붙는 후보들은 모두 지역 후배들입니다. 그들과 네거티브 선거는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상대 후보를 높여주는 모습을 보여야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양산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교육 문제가 제일 시급하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꿈을 발견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은 구조적인 문제로 대학만 들어가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꿈을 가지도록 해야 좌절하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 신자로 양산교회에서 1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아 청소년 문제에 더욱 공감한다고 했다. 강 후보는 도의원이 된다면 청소년이 꿈을 가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의정활동을 펼쳐보고 싶다고 했다. 

그 자신도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남부시장에서 돼지국밥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머니가 그를 키웠다. 양산 옥곡마을 출신으로 양산초, 양산중, 양산고를 졸업한 그는 장사에 뛰어들었다. 상북 반회마을에서 기차카페를 운영했는데 이마저도 화재가 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었다. 가장 어려울 때 그는 상북초등학교 결식아동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를 했다. 이후 이 체험이 신앙생활을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사고 이후 재활용센터를 하다가 귀인을 만난다. 함께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 씽씽코리아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이 회사는 오늘날 300억 매출, 직원 120명의 회사로 성장한다. 그는 이 회사의 양산대표다.

          <강창준 후보가 선거사무실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해야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강 후보자는 오늘날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개인의 노력 여하를 떠나 구조적인 문제에 있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국가가 나서서 대기업의 이익을 국민들이 낙수효과로 분배하도록 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했다.

우울증을 겪은 후 매년 책 50권 정도를 읽는다는 그는 독서를 통해 사상의 깊이를 알게 됐다면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도의원이 돼 작고하신 성경호 도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교육분야에서 활약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시원하게 도정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도의원이 되겠다며 시민들에게 지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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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들, 자연부락 귀속재산 놓고 분쟁

 

물금 가촌마을 전 이장, 가촌학계(契) 형사 고발

마을회관 부지 등 20억 상당 재산으로 급등해

 

<가촌마을회관. 옥상에 통신사 시설 부지 사용료 연 600만원의 수익이 있다.>

전근대사회 공동체인 계(契)가 급속한 사회 변동으로 약화되면서 권리 관계를 놓고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전근대사회의 계(契)는 지연적 혈연 공동체로 한 촌락사람들이다. 양산은 신도시의 급속한 팽창으로 자연부락이 소멸되는 과정에서 각종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자연부락 공동 소유의 재산을 놓고 구(舊)토박이들과 이후 전입한 신(新)토박이들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구토박이라고 하면 수백년 이상 마을에 거주하며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반면 신토박이라고 하면 외지에서 온 30년 이상 거주한 토박이들을 말한다. 구토박이들은 마을유림들로 구성된 가촌학계와 새마을회, 가촌동 등 3개 명칭으로 마을회관 등 공유재산을 등기했다.

물금읍 가촌리 가촌마을은 대표적인 예다. 가촌마을은 현재 430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마을회관은 1976년 건립됐다. 전통 토박이들은 새마을회, 가촌동, 가촌학계라는 명칭으로 마을 소유의 공동재산 관리해 왔다. 그런데 가촌 학계가 소유한 마을회관 부지의 소유권을 신 토박이인 김진홍 전 마을이장이 마을 전체의 소유라며 반발하면서 문제가 붉어졌다.

소송을 제기한 이는 김진홍 전 가촌마을 이장은 하북면 출신으로 30여년 전부터 물금 가촌마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신토박이인 것이다. 그는 지난 2013년 처음으로 전통 토박이들과 맞붙었다. 마을 뒷산 임야 2만5천평을 놓고 구토박이들과 송사를 벌였다. 울산지방검찰청은 구토박이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그는 가촌리 학계로부터 마을 통장에 재산 5천만원을 받았다.

<가촌리 학계에 이어져 오는 문서.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거둔 물품 목록이 기록돼 있다.>

4년이 흐른 2017년, 이들은 2차 송사를 벌이고 있다. 가촌마을 이장은 지난해 12월부로 바뀌었다. 그는 횡령 및 사기혐의로 구토박이들을 울산지법에 고소했다. 그는 구토박이들이 상업용지인 마을회관이 포함된 2개 필지를 매각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마을회관에 통신중계기기 임차 수익료 연 600만원도 구토박이들이 마을 재산으로 공유하지 않고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가촌학계 김태흠씨는 "우리마을에서 백년가까이 된 서류가 있다. 전 이장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수백년전부터 구토박이들이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주장하고 1976년 협의서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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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기국, 경남 양산 문재인 후보 자택 앞 집회

개새끼, 반역자, 빨갱이 등 거친 시위 구호 난무

 

<탄기국 경남 양산 시위대가 문재인씨의 집 앞에서 태극기 시위를 벌이고 있다.>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유력한 야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씨의 자택 앞에서 태극기 시위가 열렸다.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 경남 시위대 약 80명이 문재인 후보의 자택 100m 앞 공터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을 마친 뒤 국회 해산, 언론 해체, 탄핵 기각을 외쳤다. 

일부 시위 참가자는 1.5ton트럭에 마련한 연단에 올라 웅변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국가연구소 소장을 18년간 지냈다는 황보룡씨는 양산 웅상이 새마을운동을 창시한 의식을 제공한 곳이라며 종북좌파 문재인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고 했다.

<황보룡씨가 1.5ton 트럭 연단에서 웅변하고 있다>

이들은 2시간에 걸친 문재인씨 자택 앞 시위를 마친 뒤 덕계사거리에서 2차 집회를 열고 해산했다. 이들은 29일 열릴 서울 태극기 집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시민단체 정의로운사람들의 이원택씨는 "오늘 저희가 여기 온 목적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규탄하러 왔다. 왜냐하면 작년 12월달에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자기마음에 안든다고 보수세력을 불태워 죽인다고 해서 왔다. 여기에 대한 대답을 안하면 집회를 시도 때도 없이 할 것이다"고 말했다.

평산동에 사는 66세 여성은 "문재인이 미국과 우리나라 동맹을 안하려고 한다. 촛불은 성조기를 든 우리를 보고 미국 종이라고 한다. 문재인은 북한의 종이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왔다는 58세 여성은 "문재인에게 씨 자를 붙여 주면 안된다. 문재인은 반역자다. 박대통령은 나라를 바로 세웠다. 전교조를 없앴고 역사교과서 바꿔 나라를 바로 세웠다. 거기에 반대하는 문재인에 씨자 붙이면 안된다. 그놈은 나라 팔아먹은 놈이다. 문재인에게 개새끼라고 하면 개가 화낸다"고 말했다.

<웅상 매곡동의 문재인씨 자택 앞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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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법기리 요지, 발굴조사 무산 10하세월

 

임진왜란 후 한일 공동 프로젝트 사업

최근 문화재청에서 토지매입비 편성

농산어촌개발사업 반영관광지 기대

 

법기리 요지가 10여년만에 또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문화재청이 43천만원의 토지매입비를 편성해 양산시에 지원하면서 법기 도요지의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 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양산시는 올해 사적지를 국가 소유로 하기 위한 토지 매입과 진입로 정비 등을 펼치고 가능하다면 내년에 용역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윤영석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권에서도 마스터플랜을 짜고 지역 문화자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중앙 차원에서 본격 검토할 계획이다. 지역 도예 전문가들은 토지 매입 후 대대적인 발굴조사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법기리 요지는 진흙 속에 파묻힌 진주처럼 잠들어 있다. 양산시는 지난 2013년 우리문화재연구소와 지표조사를 한 바 있다.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사적지 일대에 팻말을 세워놓았지만 봉분과 경작지로 훼손된 상태다. 사적 100호인 법기리 요지의 지주들이 땅을 매매할 의사가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마을주민들 사이에서도 문화재 개발제한 규제로 사유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데 반감을 가진 여론도 많다.

도요지가 소재한 창기마을은 정부의 농산어촌개발사업을 물과 흙의 조화로 테마를 정하고 요지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린 마을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

송영철 창기마을 이장은 법기 도요지 개발이 본격화 한다는 확신만 있다면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최대한 협조를 얻어내겠다는 방침이다. 침체된 마을을 되살릴 방편으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양산 법기리 도요지에서 발견한 사금파리>

지난 2011년 법기리 도요지가 법기리 요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문화재청은 1963년 사적 지정 당시 법기리를 백자의 생산지로 추정했지만 최근 백자 뿐만아니라 차 사발 생산지로 주목한 것이다. 법기리 요지는 전국에 산발적으로 분포한 요지 중에서 사적으로 지정된 요지로는 손꼽힌다.

법기리 요지는 지난 2006년 일본사발의 뿌리라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일본 노무라 재단에서 사실확인을 위한 발굴 조사를 펼칠 예정이었으나 무산된바 있다. 당시 노무라재단의 발굴 비용 지원에 대한 반일 감정과 인근 지주들의 반대 때문이다. 이후에도 노무라재단은 매년 전문가를 파견해 일대를 답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이렇게 법기리 요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 국보급 찻잔으로 알려진 오기다완도 법기리에서 생산한 것으로 추정한다. 찻잔의 질감을 잘 살린 것, 입이 닿는 부분의 자연미, 찻물이 베어 옅게 번지는 외모는 자연스러운 조선인의 성정을 그대로 닮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진왜란 후 공식 통관이 절멸된 상황에서 조선과 왜의 공식 무역도 차사발로 재개됐다. 왜인이 디자인한 주문서를 발주하고 조선에서는 이를 제작해 공급했다. 법기리에서 생산된 오기다완은 한국과 일본의 퓨젼 작품인 것이다. 이는 오늘날 경색된 한일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지역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이는 전국에서도 유일무이하다. 부산 왜관이 설치되기 이전까지 약 30년간 무역이 진행됐다. 안타깝게도 부산의 요지는 경제개발로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

           <사적으로 지정된 양산 법기리 가마터 일부, 옆으로 봉분이 보인다.>

조국영 도예가는 창원시 진해구 웅천도요지는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창원시는 20억을 편성해 지난 2011년 웅천도요지전시관을 개관했다. 도요지를 복원 전시해 놓았으며 학생들의 체험관도 부대시설로 건립했다. 양산시가 마음만 먹으면 훨씬 크고 좋은 전시관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해야 할 때다. 물금의 오래된 고차수 밭이 있다. 고차수 밭에서 생산한 차와 도요지를 연계하면 훌륭한 관광 문화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한균 신정희요 도예가는 “10여년 전부터 한 주장이 아직까지도 실현되지 못해서 안타깝다. 발굴조사도 한번 못해봤다. 강조하지만 김해에는 차사발 파편이 안나온다. 노무라 재단에서 개발하려 했지만 마지막에는 나도 반대했다. 문화적 정체성과 자긍심의 문제다. 이러한 거대한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곳을 발굴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놓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것을 모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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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 도요지, 한일관계 개선의 전초기지로 삼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건립으로 한일관계가 경색 국면이다. 주한일본대사도 본국으로 소환해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리는 일본에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왜놈’이라 칭하며 민족주의의 숙취에 절어 있기도 하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친일파를 척결하자는 섬뜩한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선진국이라는 동경이 그것이다. 우리의 배타적 반일주의와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외치는 일본 내의 극우세력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양산시 법기리 요지에 대한 토지매입이 시작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법기리 요지는 십수년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아 왔지만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던 곳이어서 더욱 반갑다. 법기 요지는 이도다완의 주문생산처로 한일 공동프로젝트를 수행하던 곳이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융화된 것을 방증하는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법기 요지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조선통신사는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일본에 전해 줬다는 우월감을 나타내지만 법기리 요지에서 생산된 이도다완은 한국의 아픈 역사를 통해 맺어진 산물로서 그 아름다움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아팠던 우리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알리고 조선 사기장들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알리자. 그래서 ‘일본에 지면 현해탄을 건너지 말라’는 무조건적 반일감정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재설정 하자. 

법기리에 도자사를 통해 한일관계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기념관 하나쯤은 짓자. 더 나아간다면 찻 사발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거리를 조성하면 어떨까? 부산의 일본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훌륭한 관광 유인 상품이 될수 있을까? 실제 10여년 전 노무라재단 타니 아키라박사는 법기 도요지가 일본 사발의 뿌리라는 주장이 확인된다면 일본인 관광객들의 양산 방문이 줄이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에는 수천만의 다도 인구가 있다.
일본에는 이미 끌려간 조선 사기장들의 후손들이 훌륭한 다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보다 더 경쟁력
있는 찻사발을 제조해 일본인 관광객들이 들끓는 양산 동면 창기마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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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올랭피아' 否定은 근대정신의 不在

대통령이라서 풍자하면 안된다는 논리는 봉건적 사고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면 올랭피아는 옹호돼야 한다

<파블로 피카소의 올랭피아, 흑인 여성에 대한 인종 차별을 멈춰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국회의원이 주선한 전시회에 박근혜 대통령의 나체를 그린 작품이 내걸리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를두고 내가 만난 60대 이상의 노년층 대부분은 "표현의 자유라고 하지만 한국 정서상 용납할 수 없다"며 표 의원을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사설로 다뤄 "해도 너무하다"며 표 의원을 비난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을 부정하는 50대 여성을 취재한바 있다. 그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효수 모형, 죄수복에 오랏줄을 맨 그림을 거론하며 격분했다. 내가 만난 노년층과 50대 여성이 분노한 이유는 같을 것이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신문 1면에 대통령을 풍자한 나체 그림이 실리더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프랑스의 유명 신문 <샤를로 에브도>의 총격 테러는 이슬람 신 알라를 도박꾼에 비유하는 등 만평에 대한 불만을 품은 세력에 의해 자행됐다. 박 대통령의 나체 풍자 그림을 비난하는 이들은 총칼을 들지 않은 테러범들과 다를바 없지 않나. 당시 SNS에서 '#내가 샤를리다'는 해시테그 달기가 퍼져나갔는데 국내에 '#내가 표창원이다'는 헤시태그 달기운동이 퍼져나가길 바랄뿐이다.  

지난해 부산미학연구회 김종기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서양회화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프랑스 화가 모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서양회화의 전통에서 비너스 등 그리스 신화의 신을 나체로 표현하는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네는 과감하게도 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창녀를 그렸다. 함께 그려넣은 개가 창녀를 상징하는 도구라고 한다. 창녀가 도발적인 모습으로 감상자를 응시하는 모습에서 당시 많은 기득권 남성들의 허위와 이중성은 폭로됐다. 갤러리에서 수준 높은 전통회화를 감상하던 그들은 매춘 여성들에게 꽃을 선물하며 간음을 일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올랭피아>는 서양회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 된다.

<올랭피아>를 풍자한 그림은 또 있다. 파블로 피카소가 창녀의 자리에 흑인 여성을 그렸다. 그리고 백인 남성의 나체를 그려 넣어 또 한번 뒤집었다. 피카소가 던진 메시지는 인종 차별에 대한 피카소의 경고다. 신의 자리에 창녀를 그려넣은 것은 신을 모독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창녀의 자리에 박대통령을 그려넣은 것은 박대통령을 모독한 것이 아니다. 그림을 보고 반항하는 이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근대는 모든 인간은 천부인권을 가졌으며 평등하다는데 있다. 집회 결사 출판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 박대통령이기 때문에 풍자할수 없다는 것은 근대를 부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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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김성훈, 도의원 재선거에 불 당겨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 변경, 약일까 독일까?

더불어민주당 공천 받을수 있을지 벌써 관심

당선으로 정권교체 시금석이 되겠다는 포부

 

김성훈 더불어민주당 양산갑 대변인이 두 번째 선거 출마를 결심했다. 그는 새누리당 양산갑 국회의원 경선 후보에서 더불어민주당 도의원 후보가 되고자 한다

그가 더불어민주당 도의원 후보자로 공천을 받을지는 알수 없다. 가장 먼저 경선레이스에 불을 붙인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 아닐까

지난 26일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힌 그의 출사표는 이렇게 요약된다. "젊은 내가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의원이 전무한 도의회에 입성해 정권교체의 신호탄이 되겠다. 그래서 국회에서 배운 보좌관으로서의 경험을 쏟아 지방분권과 부패청산을 이뤄 고향 양산을 발전시키겠다"는 것. 세부적인 공약 발표는 없었다

기성 정치인들이 지역 단체에서 회원 활동을 시작하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간 반면 그는 대학 졸업 후 상경해 국회의원 보좌관 활동으로 실력을 쌓았다.

그는 40대의 젊은 정치인으로 SNS 활용에 적극적이다. 지역의 각종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변경했다. 더불어민주당으로 입당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의 패권주의를 강력 비판했다. 공천을 위한 경선과정에 새누리당의 폐습을 견딜수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새누리당 경선 당시는 불공정성을 지적했지만 일부의 선택이 아닌 시민여러분들의 선택이라고 겸허히 수용 했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같은 당 윤재영 후보가 공천을 받지 못한다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정한 경쟁에 따른 공천 결과에 깨끗한 승복이 이뤄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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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손자가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외조부께서는 병원에 입원 중일 때 집으로 오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2. 작은며느리와 딸들이 흐느껴 울고 있다. 70년을 넘게 해로하신 외할머니의 눈시울도 붉다.

3. 외조부께서는 정자나무 그늘을 좋아하셨다. 상주들이 혼백을 모시고 정자나무 밑으로 오자 슬픔에 잠겨 있다.

4. 큰외삼촌께서 친지들과 조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관 절차의 하나로 석회 가루를 관 위에 덮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출생, 민족동란 겪으며 고향에 낙향

배운것 많지만 평생을 낫과 호미자루 잡고 사시다

군북면 우계마을 7남매의 곡소리, 가을하늘 적시다

 

외조부께서 노환으로 영면하시었다. 향년 90세. 별세 이튿날인 지난 19일 삼성창원병원에 차려진 빈소에 조문을 하였다. 7남매를 슬하에 두시고 평생을 함안군 군북면의 촌락에서 농삿일을 하신 외조부 이셨다. 외갓집에 갈때면 늘 동네 정자나무 밑에서 시간을 보내신 외할아버지는 "정유이 왔나"라며 짧은 인사를 건네셨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가 청년 시절에 일본에서 공업학교를 다니셨으나 대동아전쟁을 만나 징용이 두려워 고국으로 급히 귀환했다고 전해 주셨다. 한때는 부산시청에서 공무원 생활도 하신바 있었으나 고향 함안으로 다시 오게된 사연은 이러하다.

당시 외할아버지의 부친은 마을에 구장을 하셨다. 빨갱이들이 삐라를 뿌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설에 동조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맺고 끊고가 분명한 성격이었던 외조부의 부친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삐라를 찢어버렸다. 이에 분개한 빨갱이들이 외할아버지의 부친이 주무실때 집으로 급습해 시해했다고 한다. 정부는 좌익세력에 동조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에 공헌한 이러한 공적을 인정했고 외조부의 부친은 국가유공자가 됐다.

천청벽력같은 소식을 들은 외조부께서는 집안의 유일한 아들로 아버지를 대신해 고향에 눌러 앉아 버리고 말았다. 외조부는 비록 궁벽한 시골의 농사꾼으로 사셨지만 한문 실력이 뛰어나셨다고 한다. 나에게 외삼촌인 두 아들도 일류대학에 입학시키셨다.

빈소에는 약 80개의 화환, 신발을 찾을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 정도로 조문객이 많았다. 이튿날 발인제를 지내면서 장례지도사가 조문을 읊는데 여기저기서 흐느껴 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구차를 따라서 일렬로 늘어선 자손들의 차량은 도로에서 비상등을 깜빡이며 외조부의 별세를 추모했다. 이날 가을 날씨는 외조부의 별세를 위로라도 하듯 유난히 청명했다.

장자인 외사촌동생이 흰색 장갑을 끼고 외조부의 영정사진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한평생을 몸담으셨던 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자손들도 일렬로 늘어서서 유명을 달리하신 외조부의 마지막 가는길을 배웅했다. 어머니께서는 외조부가 병원에 누워 계실때 집으로 가고 싶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는지 흐느껴 우셨다. 외조부께서 평소 사용하던 침대와 손때묻은 유품들을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동네 부락 앞 선산에 하관하러 가는 길, 드넓은 논에서는 추수를 앞둔 벼가 가을바람에 살랑였다. 붉은색 만장을 씌운 관을 어깨에 짊어진 우리들은 석곽묘에 외조부를 모셨다. 자손들이 석회가루를 한 삽씩 뿌리며 영면을 빌었다. 외할아버지, 편안히 잠드세요. 다음 생에는 징용도 없고 전쟁도 없는 좋은 시절 만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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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로 하여금 탈북자 송환을 멈추도록 전세계의 정부가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도 출생지때문에 억압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북한정권에 관심을 줄이고 북한 주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작고 갸냘픈 체구의 북한 출신 여성이 호소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한반도의 한민족은 반만년의 역사에서 하나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불과 70여년 전에 외세에 의해 두개의 나라를 세웠다. 이북의 동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과연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그저 무찔러야 하는 괴뢰집단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됐으면>책을 통해 우리가 동포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됐다. 그리고 압제에 시달리는 이북 동포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고민해보게 됐다.

책에서 탈북여성 박연미씨는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본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신들린 듯 했으며 3대 세습의 김씨 일가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면 저 모습이 진심인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세뇌를 당해도 저럴순 없다 싶었다. 책은 이 의문에 대해 어느정도 답을 준다. 그들은 압제 속에서 그렇게 하기를 강요받으며 이를 거부하면 목숨을 내 놓아야하는 전근대적 깡패국가에 의해 고통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통해 이북 동포들도 첫사랑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밤에 네 가족이 좁은 방에 누워 누구 발이냐며 장난치는 모습도 정겹다. 그들 또한 가족의 사랑속에서 사는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생각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헤어져야만 한다.

책 속에서 박연미씨가 아버지와 함께 고향 혜산을 떠나 평양을 여행하고 그 곳에서 맛본 청량음료의 맛에 놀라는 모습, 또 아버지가 밀수 무역을 하다가 젊은 아가씨와 외도를 해 다투는 모습도 우리네와 비슷하다. 딸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도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다.   

배고픔과 정서적 독재를 견디다 못한 동포들은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중국도 결코 안전한 장소가 못된다. 브로커들은 탈북자들을 중국 공안에 넘기지 않는 대신 이들을 인신매매하고 있다. 매춘부가 되거나 중국 시골에 노예로 팔려간다. 어째서 중국정부는 탈북자 강제 송환을 멈추지 않는가?

박연미씨는 천신만고 끝에 어머니와 함께 중국에서 몽골로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온다. 한국에서 그녀는 책을 읽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른 것이다. 책을 통해 비판적사고라는 것을 배우게 된 그는 세계 무대에 서서 북한 인권의 실상을 이야기 한다. 이 또한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다.

모든 것을 당에서 선택해 주던 곳을 떠나 한국에서는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녀는 이제 배고픔을 해결하겠다는 원초적인 꿈이 아닌 고차원적인 꿈을 꾸고있다. 남한의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한 그는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꾼다. 

중국에서 잠깐 재회한 아버지는 중국땅에서 숨지고 만다. 아버지의 유해를 한국으로 송환하며 그녀는 다짐한다. 조선이 하나가 되는날, 고향인 혜산의 선영에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말이다. 그날이 오려면 우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이제 그녀처럼 우리 동포들이 행동할때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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