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은 인간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사회의 생존양식이다. 또한 인간관계를 가능케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련을 맺을 수 있어 '사회적 생존'을 가능케 한다.

문자이전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경험을 중시한다. 따라서 노인계층이 힘의 행사자이다. 그러나 문자가 발명되면서 문자사용계층인 성직자나 상류사회, 소수의 상인들이 사회적 권력의 중심에서 사회를 조정, 통제하게 되었다.  

인류역사의 커다란 전환은 인쇄술의 발명으로 특정계층이 독점하고 있던 지식과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점차 확대되면서 이루어졌다.

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흐름, 그리고 내용은 곧 그 사회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인간관계의 내용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파이의 주장은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와의 관계를 매우 설득력 있게 요약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언론은 첫째로 고용을 창출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며 관련 산업을 거느리고 부양하는 주요 산업으로써의 의미, 사회적 토제, 조정, 혁신의 수단으로서 중요한 권력의 기반, 권력의 중개자, 문화 산실, 정보와 오락의 주요 공급원으로서 세상의 모습을 전달해주고 그것들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줌으로써 '사회현실'을 정의해주는 강력한 기능을 수행한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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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부터 시작된 황사에 온세상이 흙먼지에 휩싸였습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아름다워야 할 봄날에 난데없는 황사라니 속상합니다.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황사는 "중국이나 몽골 등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있는 사막과 황토 지대의 작은 모래나 황토 또는 먼지가 하늘에 떠다니다가 상층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하며 마그네슘·규소·알루미늄·철·칼륨·칼슘 같은 산화물이 포함되어 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백과사전만 보니 나쁜 것많은 아니네요. 예컨데 아프리카의 화산이 폭발하고 화산재가 초원에 떨어지면 화산재 속의 미네랄이 영양분이 되어 광활하고 푸르른 초원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 황사에도 우리를 이롭게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래바람이 중국 대륙 동해안의 공업지대에서 나온 온갖 더러운 것들을 뭍히고 국내로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또 황사가 지구 온난화에 따라 그 빈도수가 차츰차츰 늘고있고 그 강도도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황사는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황사현상에 대한 우리나라 문헌 최초의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기174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800여년 전쯤에 '우토(雨土)'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흙이 비처럼 내린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봄철의 황사가 근대 이후 인간의 탐욕과 오만에 의해 생긴 환경재앙인줄 만 알았는데 이렇게 유래가 깊다니 뜻밖이고 위안도 되네요. 

누런 모래라는 뜻의 황사보다는 토우가 훨씬 문학적(?)인 표현인 듯 합니다. 덧붙이자면 '황사'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때 처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앞으로 토우라고 부를렵니다. 그래야 좀 마음이 편해질것 같네요. 하하하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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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동네가 어수선하다. 주차금지가 씌어진 말뚝을 설치하는 사람들과 주민 몇명이 수근거리고 있다. 아주머니가 하는 말의 요지는 이렇다. "이 주차금지 말뚝이 무슨 소용있겠어요. 금새 치워버리고 말껄" 이 소란의 시작은 협소한 아파트 진출입로가 주차된 차량들로 더욱 좁아진데서 비롯됐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좁은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때문에 진입할때 애를 먹는다. 이리저리 핸들을 틀어야 하고 사이드미러를 접어야 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했다. 그런데 어쩔수 없이 이 곳에 주차할 수 밖에 없는 인근주민들의 사정도 이해가 된다. 그럼 동네 주민들은 대체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한단 말인가.


대화빌아트 운영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야간에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드나드는 쓰레기봉투 수거 차량이 진입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에 민원을 제기하고 해결해달라고 했으나 말뿐이지 아무런 대책도 없다고 했다. 하는수 없이 시의원을 불러서 이야기 했더니 물이 든 말뚝을 설치해주더란다.   

 그런데 문제는 말뚝이 인력으로 치울수 있을만큼 가볍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시가 생색내기에 불과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가 의지를 가지고 일 처리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나보고 우유부단 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시의 사정도 이해가 된다. 골목길은 시의 재산이다. 아파트 입주민의 것도 담벼락 넘어 주택 주민의 것도 아니다. 골목길에 주차하는 것에 대해 비난할 수 없다.그래서 나는 시의 사정도 이해가 된다.

 이 소란은 소소한 동네이야기지만 우리네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협소한 주차공간에 요즘 한 가정에 2대 쯤은 차를 가진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대한민국 한 동네의 일상풍경이다. 우리는 서로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출입이 어렵더라도 참고 사이드미러를 접을 줄 아는 아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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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문화체육부 선배 기자와 연극을 봤습니다. 마산 예술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입니다. 예술소극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315아트센터나 성산아트홀은 들어봤어도 예술소극장은 아마 생소하실 겁니다. 저는 거창한 아트센터나 문화홀보다는 예술소극장이 좋습니다. 그곳에 가면 풀뿌리 지역 예술의 정신이 살아있고 척박한 예술의 현실속에서도 묵묵히 자기길을 걷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LOVE IS는 뮤지컬 장르의 연극인데 사실 좀 지루했습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만남을 약속 하고 유부남인 남자1이 후배에게 약속장소에 대신 나가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나중에 알게되었는데 뮤지컬 배우가 부르는 가사에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랍니다. 특히 제가 눈여겨 본 것은 배우들의 재치있는 몸짓과 풍부한 표정이었습니다. 요즘 직장생활을 하면서 감정 표현이 억눌려 질때가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풍부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가 부러웠습니다.

 



모든 공연이 정리되고 극단 마산 단장을 비롯한 배우들과 술한잔 했습니다. 경남신문 문화부 선배기자들도 참석했습니다. 저는 자리에 않아 가만히 듣는 것 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 부지부장을 맡고 있는 단장의 이야기가 뇌리에 남았습니다. 수습기자 신정윤이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연극계에는 수습 배우가 없냐고 물었는데 단장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있는 놈도 나가는 판에 할려는 놈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 이었습니다. 

얼마전 굶어죽은 젊은 시나리오 작가나 단장이나 다를게 뭐가 있을까요? 우리 문화예술계는 왜 이렇게 척박할까요? 돈안되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 우리들의 모습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가난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단장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단장의 그 자조섞인 대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 보다는 문화의 힘이 강한나라가 되길 원한다고 했던 김구선생의 소원도 떠올랐습니다. 문화예술하면 돈안되고 굶어죽는 이 척박한 현실을 바꿔보고 싶고 기자로서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쓸쓸하고 우울한 밤 입니다. 그리고 제가 해야할 일도 많이 있음을 느낀 밤입니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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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드디어 기자가 되었습니다.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데 기자만큼 적합한 직업이 있겠습니까. 저의 오랜 관심사는 글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 이었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요

요즘 한국문학사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문학과 친하다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문학과 친해지려 합니다. 아니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 났습니다. 제가 고전문학을 읽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합성2동 새마을문고에서 제가 읽기에 적합한 쉬운 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교양 시리즈 물인데 간결하고 재미있게 한국고전문학의 흐름을 짚어줍니다. ('청소년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 김은정·류대곤 지음)


문학은 동서고금을 초월해서 인간을 알게 해주는 좋은 자료입니다. 문학을 즐겨 읽으면 저의 글쓰기 능력도 쑥쑥 자랄 것이라 믿습니다한국 고전문학은 중고등학교 시절 쳐다보기도 싫은 분야였습니다. 시험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외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읽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고전문학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졌고 한참 옛날 사람의 글이 대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생각하던 고전문학이 말입니다. 읽으니 즐거웠습니다. 그들이 고민하고 노래했던 것들이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저는 시대를 초월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대를 뛰어넘어 옛 사람의 글을 읽고 감동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인간이라 불리는 것은 아닐까요.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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