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쓴다. 이를테면 산타 할아버지, 이번 선물은요, 아픈 제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코카콜라를 주세요" 뭐 이런 소망이 적힌 편지가 아닐까 한다. 

산타클로스는 핀란드 수도에서 북쪽으로 800km 위쪽에 위치한 로바니에니 마을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산타클로스가 사는 곳으로 믿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핀란드의 체신부 직원이 어린이에게 답장을 써주면서 로바니에니라는 마을이 유명해졌다. 이는 핀란드 체신부의 정식 업무라고 하니 놀랍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기상천외하거나 엉뚱한 짓을 하면 좀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분위기가 큰 한국사회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마 거대 기업이 상업적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마케팅으로 산타클로스에게 편지써주기를 하고 요금을 청구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자본만능주의 한국이라니..

로바니에니는 인구 6만 명의 작은 소도시인데 산타우체국 때문인지 연간 관광객이 1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상품을 사면 산타우체국 소인을 찍어 국제우편으로 보낸다고 하는데 그것을 받아든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은 얼마나 기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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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건가요? 청년들이 너무 지쳐 있다는 것을 이 질문에서 느낀다. 너무 애쓰고 살지 말기를 바라고 경쟁에서 밀렸다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으로 삼고 삶을 긍정하며 주어진 인생을 값지게 살아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이 신음하고 있다. 전국에 13만 9천여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까지 포함해 40만여명이 관련 자라고 민간 연구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는 우울증 등의 정신병도 함께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외로운 늑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들은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직장을 갖지 못하고 방 안에만 틀어 박혀 생활한다. 바깥에 나오기 자체를 꺼려하고 마음의 문을 닫고 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이들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했던 청소년들이 친구들간의 가벼운 대화조차 나누기 어려워할 정도이며 '스몰토크'를 일부러 배우기까지 한다는 언론 기사가 보도되고 있는데 스마트폰의 일상화도 은둔형외톨이가 양성되는데 한가지 원인을 제공한다.   

일본에서 먼저 사회문제가 된 은둔형외톨이는 히키코모리라고 불린다. 일본 지자체가 히키코모리지원센터를 개설해 이들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상담 서비스를 하고 사회에 인입되도록 돕는 지원책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관련 지원 법안이 마련되기 전이다. 

청년 은둔형외톨이들은 온라인으로 연결된 현대사회가 배출한 신규 인간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채팅으로는 대화를 나누지만 인간과 인간이 표정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에는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사례자들은 가정폭력이나 학교에서의 폭력 등에 시달리다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창시절 학폭으로 인한 따돌림이나 정신적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정 내에서의 관계에 있어 힘들거나 성적의 하락 등으로 인해 은둔형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한국사회가 이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 장치를 마련해 상담을 통해 양지로 끌어 들여야 이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 은둔형외톨이 당사자는 "한국사회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고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특정 나이가 되면 결혼, 취업 등을 해야 한다는 당연한 압박감,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성격상 그러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데 한국사회에서 이들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으며 제도적인 지원책이 하루바삐 정착되길 바라본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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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장교에 함부로 하던 건방짐
미국서 교육받은 첫 엘리트 장교
"서울대만큼 공부잘했다 아입니꺼"

4년제 정규 학위 받은 첫 사관생도
한국전쟁 당시 진해서 훈련 받아
서울 수복 뒤 태릉 옮겨 55년 졸업

전두환은 똥배짱이 두둑하다. 영화 <서울의봄>에서 전씨는 12·12쿠데타 가담 세력에게 말한다. "김일성이 안내려 옵니다. 걱정마소" 또 이런 대사도 있다. 전 씨가 자택에 하나회 선후배들을 불러 모은 뒤 "서울대 갈만큼 공부 잘해서 육사 왔다 아입니까" 육사라는 긍지가 느껴지는 대사다. 

전두환이 실제 그런 말을 했는지, 영화 제작자가 상상으로 만든 말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육사가 4년제로 정규 졸업생을 배출한 첫 기수가 11기다. 육군사관학교 11기 전두환은 1951년 육사에 입학한다. 당시 6.25전쟁이 한창일 때 휴교한 뒤 1951년 10월 31일 경남 진해에서 정규 4년제로 재개교 했다.

전쟁 중에 서울이 수복되고 육사는 진해에서 서울 태릉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첫 열매인 11기 156명의 졸업식이 1955년 10월 4일에 거행됐다. 이해에 국회에서 사관학교 법률이 통과돼 11기는 이학사 학위를 받게 됐다. 태릉 육사 화랑대 연병장에 전두환도, 노태우도 있었다.   

전 씨는 육사생도로 첫 정규교육을 받았다는 자긍심이 강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육사가 편찬한 60주년 책자에 따르면 일선 부대에 배치돼서 11기 생도들은 위용이 높았고 기풍이 드셌고 위풍당당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육사 11기부터 미국으로 군사 유학을 갔고 초급 장교 시절엔 군 부패 척결에도 앞장섰으며 집단적 엘리트 의식과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극 중에서 선배 장군들에게도 목에 힘주고 기죽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아마 이런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육사 10기까지는 6.25전쟁서 실전으로 다져진 군 장교들이다. 11기들은 전쟁이 한창일 때 후방 진해에서 교육 받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높은 경쟁을 뚫고 4년제로 입교한 육사10기(생도2기)는 입교 몇 달 뒤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번도 없이 전쟁터에 투입됐다. 총쏘기 훈련을 배우다가 갑작스레 투입됐는데 생도 277명 중 132명이 조국을 위해 싸우다 산화했다. 이들은 정규 사관생도 과정을 다 이수하지 못했다며 졸업장도 받지 못하다 40년만인 1996년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육사 10기가 입교 1달도 채 안돼 군사교육중에 전방에 투입된 것은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가 없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도 엘리트 사관생도를 최전방에 투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육사 11기와 육사10기 1년 차이로 선배 기수는 전쟁터의 이슬이 됐고 후배는 정규 군사교육을 마쳤다는 첫 생도라는 자신감으로 정권을 찬탈했다. 그리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결국 1979년 12.12로 전두환은 정권을 찬탈한다. 선배를 깔보던 그 똥같은 자신감이 군홧발이 돼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살육했다. 전두환의 면모를 또 엿볼 수 있는 부분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이를 찬양하는 가두 행진을 벌여 박정희의 눈에 났고 비서관에 임명돼 박정희 의장을 옆에서 지켜봤다. 혁명을 옆에서 지켜 보던 청년 장교는 스스로 또한번 군인이 나라를 구한다는 우월의식으로 권력을 집어 삼켰다. 

이렇게 서울의 봄은 짓밟혔다. 별 2개짜리 보안사령관이 상관을 감옥에 처넣고 급기야 대통령을 해먹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 노태우도 대통령을 한 번 했다. 

육사10기와 육사 11기를 보면서 1년만에 뒤바뀐 그들의 생사고락을 결정한 당시 군 지휘부의 판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역사는 가정할 수 없지만 육사 10기가 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면 내가 대한민국에 제대로 교육받은 첫 장교다라는 전두환 같은 인물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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