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이비 JMS 교주가 여신도와 간음하고 기이한 성문란으로 넷플릭스 다큐로 고발되며 경종을 울리는 이 때에 나는 '하나님의 교회' 아버지 전을 관람했다. 

안상홍이라는 사람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부르고 십자가가 없는 예배당이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그 교회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이단 이라거나 사이비라고 규정짓는다. 세상이 이 교회를 보는 시각이야 어떻든 하나님의 교회가 글로벌 봉사활동으로 영국 여왕상을 받을 정도니 지구촌에 기여하는 바가 큰 교회인 것은 장점이다.

아버지 전에서는 옛 아버지의 소품들과 일기장, 그리고 고된 근로 뒤 유니폼을 입고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티지"하는 표정으로 식사를 하는 흑백사진, 늙고 주름진 얼굴로 낡은 화장대에서 때묻은 손으로 넥타이를 메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이 전시돼 있었다. 아버지들은 결국 자식들의 그루터기가 돼 주고 떠난다는 전시된 문장을 읽었는데 나에게 모든 것을 내 주시고 자식들이 쉴 수 있는 전원 속의 의령 가례면 시골집을 남겨주신 내 아버지의 그 집이 그루터기가 돼 준 것 같았다.

아버지전 관람 뒤 하나님의교회를 소개하는 언론기사 보도 건수가 수십만 건에 달하고,  300만 성도, 6대주에 교회 숫자, 각종 수상 상패를 둘러봤다.  물질에 타락한 현대의 교회가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이 피로써 세운 교회 그 본래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30분이 더 소요됐는데 기독교 세계관을 믿지 않는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나는 천국이나 영생이니 하는 개념을 받아 들일 수 없다. 사람은 죽고 새생명은 그저 탄생해야 한다. 나와 함께 관람한 한 여성 교인은 나에게 "천국에서도 좋아하는 오타바이를 탈 것이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천국에서 영생하면 얼마나 지겨울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살아 있을 때 동안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삶을 살고 죽음을 맞고 소멸해야 하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흙이 되고 다시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환이 바로 내게 하나님이다.

아버지전을 본 것 보다 전도사 여성들과 이동하는 스타렉스 차량 안에서 잡담을 나누고 내가 좋아하는 시 구절인 조지훈의 사모의 한 구절 "이 한잔은 미리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시 구절을 읊었을 때 더 즐거웠다.  
  
#하나님의교회 #아버지전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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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얼굴에는 돌어가신 내 아버지와 함안 칠원읍 새롬요양병원에 누워계신 97세 내 할머니가 있다. 그리고 어머니 2살 터울 초등학교 선생 내 동생도 있다.

아버지는 내 중학생 시절 눈썹 옆으로 오돌토돌하게 난 좁쌀 여드름을 꼭 무릎팍에 누이시고는 여드름을 손으로 터뜨리셨다. 그 덕에 나는 지금도 왼쪽 눈썹 옆 피부가 달표면 처럼 움푹 패여 있다. 나는 내 얼굴 여드름 흉터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하루는 연애시절 내 아내의 친구가 나에게 눈썹이 일자 눈썹이라고 했다. 나는 그 떄 내가 일자 눈썹인지 처음으로 알았다. 연애시절 내 아내는 내 웃는 모습을 보고 미국 만화영화에 주인공 보거스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지현이를 보고 비로소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나의 아랫 입술에 2m 크기의 좁쌀 같은 점이 있어서 먹을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먹을 복을 생각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죽어서 새가 되고 싶다고 하신 말씀도 생각난다. 

내 어머니는 나에게 아직도 잘생겼다고 한다. 내 동생의 얼굴을 보면 내 모습이 보인다. 나의 얼굴은 대학시절 자전거를 타고 창원에서 중부지방까지 국토대장정을 하며 검게 그을린 뒤 아직도 시커멓게 타고 코를 중심으로 팔자 주름이 깊게 베여 있지만 어미는 나에게 잘생겼다고 했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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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로 꾸준한 글 배달, 유통 방식 바꿔 큰 성공
솔직 담백한 20대 여성, 우정, 사랑, 외모 등  글감
복붙 난무하는 시대, 여전히 좋은 글은 가치 발휘
‘월간 이슬아’ 이슬아 작가는 글의 유통방식을 바꿔 새로운 독자를 창출했다. 글 써서 큰 돈을 버는 선도자가 됐는데 글의 유통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이 성공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좋은 글을 쓰는 글솜씨도 갖춰야 하겠지만 경영의 측면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는 이메일로 글을 보내는 글쓰기 노동자에서 핫한 작가로 성장했다. 글쓰기가 유통되는 플랫폼인 포탈사이트에 의존하지 않고 메일링서비스를 통해 글을 배달하면서 글의 유통에 있어 새로운 방법을 창출 했다. 그 배포 방식도 혁신적이었거니와 글의 소재 또한 상당히 ‘힙’했다. 이를 테면 촌티 풀풀 나는 80년대 음반의 표지사진 같은 커버사진이 그렇고 글의 내용도 누드 모델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험담 등을 소재로 글을 썼다. 사람들은 그의 글에 열광했다. 그의 글은 사춘기 소녀의 비밀 일기장을 훔쳐 보는 느낌이랄까...
요즘 인터넷에 블로그 글쓰기로 돈버는 방법만 해도 유사한 글들이 수백개가 넘쳐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솔직함과 담백함이 넘치는 글을 통해 고유한 독자층을 형성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슬아는 이후 출판사를 만들고 자기가 쓴 수필을 출판했고 소설도 썼다. 주요 언론의 관심도 받아 수차례 기사화 되며 주류 작가들에게도 알려지면서 일약 핫한 작가가 됐다. 유튜브나 각종 SNS, 숏폼 컨텐츠 이러한 미디어가 날로 소비된다. 영상과 블로그글을 보고 스크롤을 내리는데 10초도 길다. 몇초만에 눈으로 읽고 치우는 휘발성이 강한 시대에 어떻게 독자를 창출할 것인가.
참한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것의 가치는 챗GPT시대가 발달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Ctrl+C, ctrl+V가 난무하는 이른바 복붙이 넘치는 시대에 생활에서의 깊은 여운을 주는 글들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다. 전문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이 동인지를 만들거나 문예지를 출판하는데 돈이 안되고 폐간이 이어지고 곡필하는게 예사인 시대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이슬아라는 20대 젊은이가 글쓰기로 먹고 살만큼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하니 독보적인 존재다.
이슬아의 수필집을 돈이 되는 글쓰기라는 관점에서 접목해 보자면 그의 글은 또래 청년의 시각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20대의 이성친구, 외모, 사랑, 우정 같은 소재들이 글감으로 나온다. 섣부르게 독자들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또 시각, 미각, 촉각, 후각 등 감각을 활용한 문장들이 사변적이지 읺으며 구체성을 띄고 있다. 요즘말로 바꾸면 꼰대스럽지 않은 것이다.
국회전자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글쓰기에 관한 논문을 검색해서 읽어 보아도 실질적으로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때에 이슬아 작가의 책은 훌륭한 교재가 된다. 그는 꾸준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썼다. 그리고 그것을 개인 이메일로 발송하고 월 구독료를 받으면서 글을 팔았다. 예상밖의 대박이 났다. 그는 그 생각을 친구에게서 빌려 왔다고 했는데 글 배달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솔직하게 생각을 밝힌 글에는 공감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서로를 연결하고 연대하게 만들며 "나랑 무슨 상관이야"가 아니라 내 일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제2의 이슬아, 제3의 이슬아는 계속 탄생해야 한다. 
 

 
Posted by 꼬장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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